영-시

디프앤포스터의 확장 | 《diff n poster 2023》

디프앤포스터(diff n poster) 전시는 올해로 24회를 맞은 대구의 영화 축제, ‘대구단편영화제(Daegu independent Short Film Festival, DiFF)’의 부대 행사이다. 매년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선정된 상영작 40여 편을 주제로 그래픽 디자인 포스터를 만들어 전시한다. 단편영화의 특성상 영화의 포스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든 감독들도 디프앤포스터를 즐겨 관람한다.


지비마켓 지하 갤러리 대문에 게시된 2023년 디프앤포스터 메인 포스터

디프앤포스터 2023(diff n poster 2023)을 위한 메인 포스터의 그래픽 모티브는 ‘확장’이다. 왼쪽에서 시작해 오른쪽 끝까지 들어차 있는 ‘diff n poster’ 영문 레터링은 전체가 길쭉한 컨덴스드(Condensed) 스타일로 이루어져 있다. 소문자 ‘d’에서 ‘r’에 이르기까지 시선의 이동을 따라 글자는 뒤집힌 직각 이등변 삼각형 비율이 될 때까지 계속 아래로 늘어진다. 마지막 글자는 지면 높이의 절반이 넘게 아래로 내려와 있다. 2021년과 2022년 전시 포스터에는 참여자의 목록과 참여 작품의 썸네일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2023년 전시 포스터는 이 글자의 확장을 집중도 있게 보여주기 위해서 여타 그래픽 요소는 모두 들어냈다.

2021, 2022년 디프앤포스터 메인 포스터

2023년 전시의 그래픽 모티브를 ‘확장’으로 정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전시의 물리적 규모가 확장되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디프앤포스터 전시는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처음에는 5-6명이 모여서 하던 전시가 지금은 40여 팀으로 늘어났고, 오오극장 내에 있는 작은 카페 공간에서 하던 전시가 지금은 대구 중구 전역으로 늘어났다. 특히 2020년부터 꾸준히 전시장 숫자를 늘려 2023년에는 무려 일곱 곳이나 되는 전시장에서 전시를 열었다. 언제까지 전시의 물리적 규모 확장이 계속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곱 곳보다 많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전시의 물리적 확장을 전시 포스터에 기념비적으로 표시하고 싶었다.

두 번째 이유는 사실보다는 염원에 가깝겠지만, ‘전시의 영향력 확장’이다. 디프앤포스터는 지역 그래픽 디자인 포스터 전시이다. 굳이 ‘지역’이라는 단어를 앞세우는 이유는 디프앤포스터가 ‘균형’이라는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디프앤포스터는 최대한 여러 지역에서 시각 창작자를 섭외하려고 노력한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각 창작자들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대구와 다른 지역과 서울이 균형감을 가진 참여 목록을 만드는 것이 디프앤포스터의 지향점이다. 때문에 디프앤포스터 전시의 영향력 확장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더 큰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글자가 확성기처럼 점점 커지는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의 1924년 포스터가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디프앤포스터를 다룬 이 글의 주제 또한 ‘디프앤포스터의 확장’이다. 2024년 8월이면 디프앤포스터가 10주년을 맞는다. 그래픽 디자인 포스터 전시가 10주년을 맞는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2024년의 문턱을 막 넘어온 지금, 디프앤포스터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는 건 어떨까.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의 1924년 포스터
출처: wikipedia.org

디프앤포스터의 어제

디프앤포스터 전시의 시작점은 오오극장의 개관을 맞아 진행한 포스터 리디자인 프로젝트였다. 2015년 2월에 개관한 오오극장은 전국에서는 네 번째,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최초로 설립된 독립영화전용관이다. 디프앤포스터의 전신인 《독립만개 포스터 디자인 프로젝트》의 첫 전시장은 오오극장 1층에 위치한 삼삼다방이었다. 시민 모금을 통해 설립한 극장인 만큼, 전시의 목적은 청년 시각 예술가들과 독립, 단편 영화를 연결하려는 의도였다. 한상훈 전 대구민예총 사무처장이 처음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대구민예총 예술위원회가 자금 지원을 했다. 전시의 총괄 기획은 정재완 북 디자이너가 맡고, 대구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준혁 그래픽 디자이너가 예술 감독 란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과는 형식과 규모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5-6명의 참여자가 상영작과 상관없이 영화를 골라 포스터를 리디자인했다. 초기에는 ‘대구의 시각 창작자들’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상영작 전체를 참여자와 연결시키는 지금의 규모는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몇 해 동안 전시를 이어가며 점점 변화를 겪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현재 대구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였던 섭외 폭을 지역 밖으로 확대한 것이다. 참여자가 늘어나니 나름의 근거와 방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본격적으로 《무비 x 아트(Movie x Art) 독립만개: 독립영화, 예술을 보듬어 꽃피운다》라는 사업명으로 대구문화재단에서 예산 지원을 받았다. 대구단편영화제 상영작 중 36편 영화를 선정해 포스터를 만들었다.

디프앤포스터의 오늘

디프앤포스터가 지금의 형식과 규모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감정원 대구단편영화제 사무국장의 역할이 컸다. 감정원 감독은 2018년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사무국 스텝으로 영화제와 전시를 경험하고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대구단편영화제 사무국에서 사무국장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2019년 ‘동네 가게 스폰서’라는 대구단편영화제 소규모 후원 제도를 만들어 오오극장이 위치한 북성로 일대의 소규모 후원자들을 규합했다. 영화제 기간 중에 가게를 홍보해 주는 대신, 작은 할인 행사를 하거나 영화제 굿즈를 증여 또는 판매하는 제도이다. 오오극장과 삼삼다방에 머물러 있던 시선을 바깥으로 확장시킨 것은 동네 가게 스폰서의 힘이었다.

2020년 디프앤포스터는 전시장을 두 군데로 늘렸다. 오오극장 내에 있는 삼삼다방 외에 북성로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 ‘대화의장’으로 전시를 확장한 것이다. 두 전시장의 구성은 차이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장소가 협소한 삼삼다방은 40여 장의 포스터를 한눈에 모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대화의장 전시는 잘 정돈된 전시 장소와 함께 포스터 하나하나를 곱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디프앤포스터를 삼삼다방 밖으로 끄집어 내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다. 2019년에는 대구 동성로와 수성못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전시에 참여한 포스터를 거리 현수막 형태로 전시했다. 디프앤포스터의 전시 참여작들을 모아 SNS 계정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와 온라인 공간의 전시는 집중도가 낮았다. 작품을 진지하게 감상하는 관람객이 없으면 전시는 존속되지 않는다. 일련의 노력들 위에 ‘문화 공간’라는 키워드가 놓이니 돌파구가 보였다. 디프앤포스터는 대화의장을 시작으로 점차 전시 장소를 넓혔다.

2021년 대화의장 전시 풍경을 담은 포스터형 전시 도록, 앞과 뒤

대구는 커피 문화가 유독 발달한 지역이다. 대화의장도 훌륭한 문화 공간이지만, 대구의 ‘문화 공간’이라고 하면, 역시나 소규모 카페들을 빼놓을 수 없다. 디프앤포스터는 2022년부터 이런 소규모 카페들로 전시 공간을 확장했는데, 그 원동력은 카페나 식당 등 요식업 분야에 집중된 활동을 하는 김서희 브랜드 디자이너의 도움이었다. 2022년 전시는 두 군데의 ‘전체 전시’장과 세 군데의 ‘부분 전시’장으로 구성했다. 삼삼다방과 제로 웨이스트 숍 더커먼(The Common)에는 40여 점 포스터를 모두 걸어 전시의 구심점으로 삼았다. 나머지 이씨씨(E.C.C.), 에버글로우(Everglow), 이얼즈(Years.)와 같은 카페 공간에는 포스터를 몇 점씩 나누어 전시를 했다. 오오극장과 삼삼다방이 있는 북성로에서부터 동인동에 위치한 더커먼까지를 전시의 동선으로 생각하고 중간에 위치한 이씨씨, 에버글로우, 이얼즈 카페로 동선 유도를 한다는 것이 김서희 브랜드 디자이너의 공간 기획이었다. 2023년에는 총 다섯 군데였던 전시 장소를 일곱 군데로 늘렸다. 카페 전시도 좋지만, 포스터 40여 종을 모두 모아 볼 수 있는 전체 전시장을 늘리려는 의도였다. 여전히 오오극장 내 삼삼다방 갤러리를 중심으로 두되, 동인동에 위치한 더커먼과 더불어 대봉동에 있는 아이리시(Irish) 맥주 바 지비마켓(GB Market) 지하 갤러리에 전체 전시장을 마련했다. 2022년과 마찬가지로 북성로와 대봉동 사이에, 그리고 동인동과 대봉동 사이에 부분 전시장을 만들었다.

2023년 디프앤포스터 전시 풍경
리시트커피(Receipt Coffee) 봉산점, 이에커피(eecoffee)

디프앤포스터의 내일

2024년은 뜻깊은 해이다. 대구단편영화제가 25살이 되고, 디프앤포스터는 10살이 된다. 하지만 올해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와 대구단편영화제사무국의 사정은 야속하게도 좋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와 대구시가 문화 사업을 위한 예산을 대폭 줄인 탓이다. 하지만 움츠려들 수만은 없다. 디프앤포스터는 대기만성형 전시이다. 작게 시작한 일이 꾸준한 노력을 만나 크게 확대됐다. 처음부터 예산과 계획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아니라 점점 기틀을 만들어가며 발전해 왔다. 그래서 어제와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전시이다. 여러 가지 사정 탓에, 10주년을 기념한 큰 변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어제보다 나은 작은 성과를 만들 예정이다. 뜨거운 햇볕 아래 수목이 더 푸른빛을 띠듯, 2024년 8월 뜨거운 대구에서 역경을 이겨낸 싱그러운 영화제와 전시를 만나길 기대해 본다.

2023년 디프앤포스터 전시 풍경
더커먼(The Common), 롤러커피(Roller Coffee), 피플스커피(Peoplescoffee)

《diff n poster 2023》

2023.8.22.-9.16.(전체 전시): 오오극장(삼삼다방)/더커먼/지비마켓 지하 갤러리
2023.8.22.-8.30.(부분 전시): 롤러커피/이에커피/피플스커피/리스트 커피(봉산)


➀2020년 두 곳, 2021년 세 곳, 2022년 다섯 곳, 2023년 일곱 곳.

➁ Books in all branches of knowledge, Alexander Rodchenko, 1924.

➂2015년부터 2022년까지.

➃2015년부터 2019년까지.

➄현재는 활동 지역과 성비의 균형을 맞춰 참가자를 섭외하고 있다. 2024년에는 대구 16팀, 서울 12팀, 부산과 해외 참가자가 각각 5팀, 광주 3팀, 대전 2팀, 울산과 옥천, 안양 참가자가 각각 1팀이었다. 그중 남성 참가자는 22팀, 여성 참가자는 21팀, 혼성 참가팀은 3팀이었다.

➅롤러커피(Roller Coffee), 피플스커피(Peoplescoffee), 리시트커피(Receipt Coffee) 봉산점.

➆이에커피(eecoffee) .



디프앤포스터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글,사진.구민호 2024.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