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시

버려진 것들의 가치 | 더쓸모 협동조합

쓸모를 다 해서 버려지는 물건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쓰레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래서 쓰레기는 가치가 없는 것, 다시 찾지 않는 것들이다. 그런데 남들이 관심 가지지 않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의 쓰임을 재정의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쓸모 협동조합’은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가고 싶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 모여 지구를 위한 쓸모 있는 놀이를 하는 환경예술 교육 단체이다. ‘더쓸모 협동조합’이 쓸모를 다해서 버려진 것들의 새로운 쓸모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4월 27일 대구 북구에 있는 ‘더쓸모 협동조합’ 사무실을 찾았다. 작은 사무 공간과 소품을 전시, 판매하는 스토어가 있고, 사무실 한편 작업 공간에는 플라스틱 재활용을 위한 기계와 공구들이 즐비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작은 테이블 위에 텀블러에 담긴 차가 놓였다. 환경을 생각하는 그룹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버려진 것들에 주목하게 되었는지, 환경을 보호하자는 메시지를 콘텐츠에 어떻게 녹여내는지, ‘더쓸모 협동조합’의 양민경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원래 인형극을 주로 하던 단체였다고요?

네, 맞아요. 저희는 인형극으로 주로 활동하던 단체였어요. 버려진 인형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인형극이었죠.

Q.버려진 인형들을 활용해 인형극을 시작하신 이유는요?

우선 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경력이 단절됐어요.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은 상황이었죠. 제가 원래 연극을 전공했거든요. 전공을 살려서 ‘37.5도 마이오네트 인형극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목각 관절 인형이 우리 정서에는 낯선 문화이다 보니, 아이들이 무서워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동네 산책을 하는 중에, 커다란 인형 하나가 쓰레기 더미에 푹 처박혀있는 것이 보이는 거예요. 제가 보기엔 아직 깨끗하고 예쁜 인형인데... 어쩌다 버려졌는지, 너무 안쓰럽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이렇게 버려진 것들에게 저마다 사연이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보게 됐어요. 이것들을 활용해서 인형극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그래서 버려진 인형들과 장난감을 가지고 인형극을 시작했습니다. 37.5도라는 극단 이름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버려진 것들에도 온기를 주자는 의미거든요.

Q.‘더쓸모 협동조합’으로 단체의 이름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2019년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37.5도가 굉장히 예민한 온도가 되어버려서… (웃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인형극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문화 예술계의 침체기였죠. 그렇다고 단체를 와해시킬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어쨌든 저희는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단체니까, 정크아트에 더 집중해 보기로 했어요. 저는 그 때 인문학 강사로 전향해서 활동하고 있었어요. 그 외에도 단체 안에 강사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정크아트를 활용해서 환경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이것을 활용해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좀 더 직관적인 네이밍의 ‘더쓸모 협동조합’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죠.

Q. 환경예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환경예술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는 ‘환경을 위한 활동’의 순화된 표현이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환경을 위한 활동을 합시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모두 부담스럽게 생각하더라고요. 환경 문제를 어렵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환경 감수성이 현저히 낮은 상태의 사람들인 거죠. 그 분들에게는 ‘쓰레기를 무조건 줄여야 해! 일회용품 쓰지 마!’하고 강압적이고 훈계하듯이 다가가는 것보다 예술로 접근하는 것이 더 쉽고 재밌게 느낄 것이라 생각했어요.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는 예술에 대한 순수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이 인형극을 보고 즐거워했듯이 말이에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 그리고 환경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예술적 행위들을 을 종합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환경예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됐습니다.

플라스틱을 재가공하여 소품 및 교구를 만들기 위한 환경이 적절히 갖추어져 있다.
버려진 그림책들을 수거해 그림을 하나하나 오려서 아트북으로 재탄생시켰다.
버려진 폐 전선을 수거해 작품을 만들었다.

Q. 환경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렇게 각 잡고 시작하려면 어려워요. 왜냐하면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정말 편하거든요. 그러니까 있는 자리에서 하나를 만들어가 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아요. 내가 어디 가서 플로깅을 하겠다, 일회용품 쓰지 않겠다, 이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벼운 일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물을 마실 때에는 마트나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 먹는 것이 아니라 텀블러에 물을 담아 다니는 방법이 있고요. 가까운 거리의 식당에서 음식을 배달시켜먹을 때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다회용기에 포장을 해와서 먹는 방법 등이 있어요. 많이 알려진 방법이니,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관련 프로젝트나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혹시 폐간판 천이 뭔지 아세요? (사진을 검색해서 보여주며) 이게 아크릴이나 플라스틱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두꺼운 비닐이에요. 만져보면 말랑말랑한데, 튼튼해서 잘 찢어지지도 않아요. 그런데 간판을 교체하거나 가게가 폐업을 하면 버려지게 되는 거예요. 너무 멀쩡하고 튼튼한데도 말이에요. 폐업하는 가게에 간판을 떼고 있던 사장님한테 가서 이거 버리실 거냐고 물었어요. 당연히 버리겠죠, 하시길래 저한테 달라고 했어요. 제가 이걸로 뭐라도 만들겠다고. 처음엔 잘 안 주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인쇄하고 난 뒤 잘라서 버리는 자투리 천을 달라고 하니까 다행히 그건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한 두번 얼굴 트고 나니까, 지금은 자투리 간판천을 많이 가져다주세요. 받아와서 이걸 재단해놓고 보니까 하나의 패턴 디자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카드지갑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어요. 폐간판 천은 앞으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업사이클링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플렉스 간판➂ 예시. (출처: 간판114광고기획 홈페이지)
폐간판 천을 활용해 제작한 카드지갑.

그리고 이건, 장난감 폐플라스틱을 모아서 만든 젠가예요. 젠가를 활용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어요. 정말… 피, 땀, 눈물이 들어가 있어요. 시중에서 나무젠가를 너무 쉽게 구매할 수 있잖아요. 더 반듯하게, 더 알록달록한 조각을 만든다고 더 특별해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더 특별해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젠가와 환경예술을 합쳐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죠. 환경 교육을 위한 교구로 활용할 수 있게 말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17가지 목표' 중 몇 가지를 가지고 와서 여기에 심어보자 했어요. 하지만 인쇄를 하는 순간 또 재활용을 할 수 없는 쓰레기가 되어버리잖아요? 다른 어떤 첨가물 없이 메시지를 새기기 위해서 젠가의 앞뒤에 하나하나 다 각인을 새겨 넣었어요. 쓸모를 다 하더라도 재활용이 가능한 장난감으로 재탄생하게 된 거죠. 아직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해요. 두번째 환경 교구로는 환경 보드게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업사이클링 젠가. 기후 위기, 해양생태계, 육상생태계, 종자의 보존 등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Q. 앞으로의 활동이 더 기대되는 단체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을까요?

가까운 계획은 대구 안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음부터 끝까지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을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이 체험관에서 버려지는 폐장난감, 일회용품들을 모아서 교육도 하고, 작품 활동도 하고 싶어요. 지역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들이 지역 내에서 순환하게 되는 거예요. 멋지지 않나요? 환경예술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피드백 중 하나가 쓰레기를 활용한 예술 작품 전시나 체험들이 잠깐 열리고 만다는 거예요. 상시로 관람하러 올 수 있는 체험관이 필요해요. 무엇보다 우리와 같은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합니다.

대세가 되어버린 ESG 경영, 비건, 동물복지. 그러나 시각디자인학과에 다니면서 환경문제를 생각해가며 작업하기란 쉽지 않다. 폼 보드에 인쇄되어 재활용하지 못하는 포스터 작품, 전시 홍보 현수막, 특수 인쇄된 명함, 패키지들… 어느 순간 오염된 환경에 대해 부채감을 느끼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러나 환경보호를 위한 디자인 작업을 한다는 것을 어렵게 받아들이지 말자. 사실 우리는 이미 브랜딩 작업을 통해서 상품을 특별하게 만들어 본 경험이 한 번쯤은 다 있다. 뉴욕의 쓰레기를 판매하여 상품화 시킨 젊은이의 사례도 있지 않은가. 버려진 것들에 스토리텔링을 더해 작품을 만들어내고, 인형극을 만들어내는 ‘더쓸모 협동조합’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 때다.

‘더쓸모 협동조합’ 양민경 대표가 플라스틱 업사이클링 젠가를 들고 있다.

더쓸모 협동조합

대구광역시 북구 경대로5길 16


➀개인이 자연환경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갖게 되는 자연환경에 대한 공감적 정서.

➁이삭을 줍는다(plocka upp)는 뜻의 스웨던어와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산책이나 조깅 등 운동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전세계적 환경운동의 하나.

➂플렉스 천(비닐 원단. 조명용 / 비조명용으로 나뉨)을 알루미늄 프레임에 고정시켜서 제작하는 방식으로, 제작 시 컬러 표현의 제약이 적고 제작 비용이 저렴하여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간판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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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이가희 2023.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