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시

사진으로 만나는 뉴욕의 겨울 |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관람 당시는 겨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겨울에서 가장 포근했던 온도를 전달받았을 것이다. 몇 달 후 봄이 오고 계절이 포근해졌지만, 사울 레이터 전은 2달 연장되어 5월 29일까지 만나볼 수 있으니 남은 기회를 놓치지 않길.

Red Umbrella, c.1958 ⓒ Saul Leiter Foundation

사울 레이터(Saul Leiter, 1923-2013)는 미국에서 태어나 예술적 태동기를 맞이한 1940년대의 뉴욕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과 함께 많은 사상과 담론이 격돌하던 시대임에도 레이터는 특별히 어느 쪽에도 동조하지 않았다.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목받지 않았을 뿐 그는 1940년대부터 컬러 필름을 사용한 컬러 사진의 선구자였다. 당시에는 색상 재현에 한계가 많아 진실을 왜곡한다는 이유로 컬러 사진이 외면을 받았지만 레이터는 계속해서 컬러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복원한 사진집을 계기로 그는 살아있는 전설로 재평가되었다.

레이터의 사진은 얼핏 보면 배경화면으로 쓰고 싶은 감성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 진가를 놓칠 수도 있다. 그 속에 담긴 시대적인 거리 풍경, 독특한 구도, 사색적 분위기의 색감과 피사체를 하나씩 뜯어보면 레이터만의 사진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 막바지에 그의 구도를 따라서 사진을 찍어볼 수 있도록 소품이 준비되어 있다.)

Untitled, undated ⓒ Saul Leiter Foundation

레이터의 사진은 두 가지의 시선이 존재한다. 위의 사진을 보자. 굽은 등과 처진 어깨, 흰머리를 가진 노인의 뒷모습과 그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똘망한 눈을 가진 아기의 얼굴이 겹쳐져 있다. 프레임 안에 마치 여러 개의 레이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인위적으로 겹친 것이 아니다. 초점을 맞춘 원거리 피사체와 유리창에 비춰 흐릿하게 겹쳐진 근거리 피사체를 함께 담은 것이다. 두 피사체가 겹치면서 이 사진은 세대와 인생을 아우르는 또 다른 이야기를 담게 되었다.

그리고 전시장에 걸린 레이터의 사진을 관람객이 촬영한다면 세 번째 시선이 담긴다. 전시장에서 작품의 사진을 찍을 때 작품 액자 유리에 다른 조명이나 사람들이 비치는 것이 거슬릴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편을 걷어내고 레이터의 시선에 나의 시선까지 얹어보자. 유리에 비친 나의 손과 그림자, 지나가는 사람들, 뒤편에 걸린 액자들까지 오마주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레이터는 유리창에 비친 풍경과 본인의 모습까지 그대로 담아 자화상이라고 칭하였다.

Canopy, c.1958 ⓒ Saul Leiter Foundation

레이터의 사진은 공간이 하나 더 존재한다. 위의 사진은 차양의 검은색 그림자가 세로 전체의 3분의 2 비율을 차지하고 나머지 하단 3분의 1의 공간은 하얀 눈이 내리는 거리 배경에 검은색으로 인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어두운 차양과 밝은 거리의 대비로 인해 생긴 독특한 구도는 사진을 감상할 때도 두 지점을 나누어서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이때 우측 아래에 있는 남성에게 시선이 먼저 가서 이 사진의 주제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사진의 제목은 ‘차양’이다. 이로써 두 공간 모두 각각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바쁘게 흘러가는 뉴욕 한가운데에서 홀로 느려진 시간을 걸었던 레이터. 사진의 한 지점, 한 지점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시선부터 사색까지 나누어 감상할 수 있을지 모른다. 특히 슬라이드 영사기로 사진이 한 장씩 상영되는 어둠의 공간에서는 아날로그한 당시의 감성에 잠길 수 있다.

Piknic 인스타그램 @piknic.kr

레이터는 인화한 사진을 작은 크기로 찢어 그 조각을 ‘스니펫(Snippets)’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것을 매우 좋아했다. 비현실적으로 멋있는 곳도 아니고 어느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도 아니다. 레이터가 머물렀던 거리, 지나갔던 풍경, 함께 했던 사람들의 조각. 그것이 모여서 만들어진 지극히 일상적인, 작고 따뜻한 세계는 2022년의 우리에게도 그의 따듯함을 전달하기 충분했다.


“나에겐 유명한 사람들 사진보다 빗방울 맺힌 유리창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제 사울 레이터의 감성을 충전하였다면 고스란히 가지고 영화 <캐롤>도 감상해 보자. 겨울의 포근한 분위기와 화면의 색조, 서정적인 연출이 그 여운을 이어갈 것이다.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장소: 피크닉 (piknic),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6가길 30
기간: 2021. 12. 18. - 2022. 05.29.
운영시간: 화 - 일 10-18시
입장마감: 17:00


글. 김가연 2022.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