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시

대구에서 만나는 65권의 그래픽 | 《우연한 컴백! 그래픽 숍》

카페 리프레쉬먼트의 유리창 전경 1

지난 여름, 《우연한 컴백! 그래픽 숍》 전시가 카페 리프레쉬먼트(Refreshment)에서 열렸다. 리프레쉬먼트는 첫 스프레드 시리즈 전시를 함께 한 ‘사월의 눈’과 긴밀하게 협업하며 의미 있는 출판사 스프레드 시리즈 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사월의 눈, 열화당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스프레드 시리즈 전시이다.

프로파간다(Propaganda)는 그래픽 디자인 전문지 『GRAPHIC』을 발간하는 출판사다. 《우연한 컴백! 그래픽숍》 전시는 프로파간다의 잡지, 서적 판매 숍 운영(2013/09 - 2015/08, 서울 마포구 합정동), XS:영스튜디오 컬렉션(2015/10,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이어 3번째로 열린 전시이다.

전시를 즐기기 위해 리프레쉬먼트(Refreshment)를 찾은 방문객이라면, 일단 카페 바깥에서 유리를 꾸민 글자들 너머로 서가를 들여다보기를 추천한다. 그 다음 카페로 들어가 책이 꽂힌 서가를 감상하고, 커피가 나오는 동안 읽을 책을 골라 보자. 진한 커피 향과 가볍게 읽기 좋은 주제의 책들, 나른한 오후를 깨우기엔 이만한 것이 없다. 전시 기간 중 책을 구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출판사들의 책을 전시로 즐기고, 마음에 드는 책을 바로 사서 가지고 나갈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카페 리프레쉬먼트의 스프레드 시리즈 전시의 큰 장점이다.

프로파간다의 단행본과 그래픽 잡지가 전시된 서가 1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출판사 프로파간다가 출간한 단행본들과 잡지를 가까이에서 모아 볼 좋은 기회이다. 물론, 프로파간다가 한 번에 많은 부수를 찍어내는 출판사는 아니기 때문에, 『GRAPHIC』 지의 모든 이슈를 만날 수는 없다. 그게 아쉬운 독자라면 2013년에 출간된 『Texts: GRAPHIC 2007-2011(No.1~20)』을 주목하기를 바란다. 초반 5년간 발행한 『GRAPHIC』의 20가지 이슈를 텍스트 위주로 묶은 책이다.

단행본 역시 같은 이유로 65권을 모두 모아보기는 힘들다. 아직 절판된 책은 아니지만, 2016년 출간한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은 프로파간다의 단행본 중 인기 도서에 해당하므로 지금 시점에서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 밖에도 서브컬처와 시각문화, 건축 등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흥미가 동할만한 책들이 카페 리프레쉬먼트 서가에 진열되어 있다.

프로파간다의 단행본과 그래픽 잡지가 전시된 서가 2

그래픽 디자인 전문지 『GRAPHIC』

그래픽 디자인 전문지 『GRAPHIC』은 창간 이래 ‘원 이슈 - 원 테마(One Issue - One Theme)’라는 다소 극단적인 편집 방침을 실천하고, 그 방법을 고수하면서 그래픽 디자인 이슈를 더 집중력 있게 소개한다. 프로파간다 출판사는 2007년 1월 『GRAPHIC #1: 한국의 잡지 아트디렉터들』을 발간하고, 같은 해 10월 『GRAPHIC #4: 북디자인 이슈』가 출판사들 사이에서 큰 이슈를 불러일으키면서 본격적으로 그래픽 디자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다음 해 10월 『GRAPHIC #8: 스몰 스튜디오』에 이르러서 전문지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잡지 못지않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명실 상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래픽 디자인 잡지로 자리 잡았다. 워크룸(Workroom), 슬기와민, fnt와 같은 소규모 스튜디오들의 급부상과 그들의 활동에 대한 젊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선망을 시의적절하게 반영한 결과였다.특히, 프로파간다와 비슷한 시기에 소규모 스튜디오로 출발한 워크룸은 『GRAPHIC #8: 스몰 스튜디오』 이후 굵직한 활동으로 그래픽 디자인계에 중요한 이력을 남겼다. 2022년 4월 『GRAPHIC #48: 워크룸 15년(2006-2021)』은 그런 의미에서 프로파간다 출판사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 이슈이다.

한편, 2009년은 프로파간다에게 중요한 해였다. 『GRAPHIC #9: Werkplaats Typografie』를 계기로 당시 네덜란드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에서 유학 중이던 김영나 디자이너와 협업하기 시작했다. 잡지의 외형뿐만 아니라 구조와 유통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원 이슈 - 원 테마’라는 기본 골조는 유지하되, 한국어와 영어를 병기하고,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유통망을 구축했다.프로파간다의 첫 단행본 출간이 시작된 것도 같은 해다.

프로파간다의 단행본 출판

지금까지 프로파간다에서 출간된 단행본은 65권에 이른다. 그중 2009년에 출간된 『지금, 한국의 북디자인 41인』과 『창작 그림책과 작가들』, 2011년 출간된 <자율과 유행>은 『GRAPHIC』 잡지의 연장선상이다. 특히, 『지금, 한국의 북 디자인 41인』과 『자율과 유행』은 이미지와 정보를 균등한 무게로 나열하는 프로파간다식 아카이브 출판 형식을 잘 보여준다. 독창적인 방식이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프로파간다가 오랜 잡지 편집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선호하게 된 구조로 볼 수 있다.

프로파간다가 ‘서브컬처 퍼포먼스로서의 출판’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2012년부터이다. ‘가볍다’, ‘돈이 될 것 같지 않다’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본격적으로 시도되지 않은 하위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내용보다는 형식에 초점을 맞춘 출판을 지향하는 것이 프로파간다의 방식이다. 기존 출판사에서 유명한 건축물들을 위주로 ‘건축’ 분야를 다룬다면, 프로파간다는 너무 흔해서 주목받지 못하는 ‘우리 주변의 건축’을 주제로 『진짜공간』이라는 책을 냈다. 후미진 골목이나 공터에서 배회하는 십 대 청소년들의 반항기 어린 날 것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 『키드 노스탤지어』를 내는가 하면, 출간 이후로 1만 5,000 부가 넘게 팔렸다는 『연필 깎기의 정석』은 다양한 연필 깎기 방법을 진지하게 소개하고 있다. 출간 당시 적지 않은 관심을 끌어모았던 『비밀기지 만들기』는 저자명부터 ‘일본기지학회’이다.

카페 리프레쉬먼트의 유리창 전경 2

우연한 컴백! 그래픽 숍

『GRAPHIC』, 『한국의 북디자이너 41인』, 『지금 여기 독립출판』, 『한글 레터링 자료집 1950-1985』, 《도서관 독립 출판 열람실》, 《XS: 영스튜디오 컬렉션》, 《Poster Issue 2016》, 《100 films 100 posters》.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출판사 프로파간다는 늘 뜨거운 감자다. 시각 문화 출판은 필연적으로 유행을 좇는다. 한국에서 유행과 서울을 따로 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앞선 두 번의 ‘그래픽 숍’이 서울 한복판에서 열렸다는 사실만 따져봐도 프로파간다에게 '서울'이 갖는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프로파간다에게 서울은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도시였다. 그런 프로파간다가 서울을 따나 군산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세 번째 ‘그래픽 숍’을 대구 삼덕동에 열었다. 군산도, 대구도 프로파간다에게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다. 선택의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서울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군산과 대구는 프로파간다에게 아직 우연한 인연이다. 그래서 ‘우연한 컴백’이다.

그렇다고 항상 우연이 필연보다 가벼운 것은 아니다. 프로파간다는 새 길을 찾고 있다. 초행길에는 우연히 눈에 띈 건물 하나, 간판 하나가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법이다. 이쯤되니 프로파간다의 ‘탈서울’이 우연일지, 필연이 될지 궁금해진다. 확실한 건 처음으로 기차 타지 않고, 숙소 예약하지 않고 프로파간다의 15년을 압축해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지금, 여기(대구)에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삼덕동으로 향할 것을 추천한다.


전시 장소 및 사진 제공: 리프레쉬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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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구민호 2022.10.